썬,더 호글 2016. 3. 6. 23:13

봄이 왔다. 나는 매화에 한이 맺혔는지 매화를 잔뜩 찾아보고 있고, 더 이상 심장 벌렁거리는 연애는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봄 내음에 마음이 뛰는 봄처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향긋한 봄이 왔기에 마음과 몸이 두근거린다. 두근두근하다. 어차피 똑같은 일상을 지낼거면서 새로운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혹은 새로운 일을 벌여 볼까 하고 기대를 갖는다. 미련한 나- 


 나는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기술을 익히는데 집중하고 있다. 아, 집중하려고 한다. 목표는 너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외국으로 나가는 것. 변함없다. 한국에서 나의 능력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 아깝다. 글을 쓰는 것 조차도 조심조심, 그런 곳은 내게 적합하지 않다. 나는 이미 서양물이 들어버렸다. 한국을 바꾸는 것으로 내가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믿음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러한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책임감은, 특별한 사람만이 스스로  갖는다. 희생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 나보다 대의가 더 중요한 사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틀리지 않았으리라는 확신 등이 고르게 뭉쳤을 때 커다란 것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그리고 그 책임감에 따라 행동하고 난 후의 결과는 참담하다. 사람들은 그러한 책임감의 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다. 자기만 옳은 줄 알고- 혹은 바보같이 왜 저걸 자기가 해- 등. 전자가 비판이고 후자가 걱정어린 꾸중이라지만 둘다 행동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발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나는 지난 시위를 통해서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봤다. 그리고 나는 나의 특별함을 확인했다. 단순히 자아정체성을 위한 특별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고, 틀리다고 생각하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줄 아는 정의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에서 살다가는 그 특별함이 내 영역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 잘라내고 객관화 하면서 사람들의 평균치에 맞추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할 것 같다는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서 산다고 해서 나의 특별함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언어적 장벽, 인종적 장벽이 존재하는 외국에서는 내가 나의 특별함을 활용할 폭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양을 나의 삶의 터전으로 삼겠다고 하는 것은 최소한 그들은 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정의롭지 않아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쓰레기를 길에 버리는 친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크게는 옳지않은 정치 행태에 대해서 지적해도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을까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려고 하는 것은 나의 특별함으로 언급했던 용기에 반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용기를 내었을 때, 모두가 행동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문화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튀면, 죽는다. 그게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튀면 죽는다. 이것은 권력자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더 작은 사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몸서리치게 목격하면서 자랐다. 숨으려고도 해봤고, 행동하려고도 해봤다. 나는 둘다 고통스러웠다. 무기력하게도, 나는 그래서 최소한 문화가 다른 곳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겪어야 할 수많은 부차적인 피해를 감수하면서 까지도. 


 이렇게 글이 길어진 것은 오랜만에 공을 들여서 글을 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체로 나는 일필휘지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따라 단어 선택을 좀 더 신중하게 했다. 이것도 코딩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번에 만들어 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잘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충분한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집중했다. 생각을 글로 잘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봄이 와서 두근거리는 사소한 일상에서, 정호ㅇ 교수님 말씀 때문에 괜시리 심란했던 이야기를 써보았다. 그래, 이런 사소한 행복이 나를 즐겁게 할 수도 있네.